책소개
<헤르만 전쟁>이 완성된 1808년은 프로이센이 나폴레옹에게 패배함으로써 독일 민족의 저항이 일기 시작한 해다. 이 무렵 클라이스트의 창작 활동은 시대와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민족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나타낸다. 이 작품 역시 독일인의 증오와 열정을 일깨워 해방전쟁을 촉구하기 위한 사회·정치적 사명으로 쓰였다.
그러나 민족의 이념을 성취하기 위한 주요 수단이 바로 증오심이라는 데 이 희곡의 특이점이 있다. 게다가 정치적 증오의 잔가지인 배신, 거짓, 희생, 교활, 잔혹성 등이 극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헤르만은 민족해방운동의 화신으로, 자신의 이념 추구를 위해서는 인간의 윤리적 감정도 문제 삼지 않는다.
클라이스트의 이 희곡에서는 정의로운 일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얼마나 비양심적인 흑색선전이 행해지는지, 헤르만이 동포들에게 투쟁을 촉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간계와 거짓말을 이용하는지, 그리고 목표 달성을 위해 자신의 증오를 얼마나 체계화하고 절대화하는지 극명하게 보여 준다. 극의 구도 역시 영웅적 격정과 테러리즘이 맞물려 있음을 보여 주며, 자유 투쟁이 도덕적 타락이라는 희생을 치러야만 성공할 수 있음을 인식케 한다. 따라서 클라이스트의 <헤르만 전쟁>은 한마디로 아주 위험한, 독일적 광포에 관한 희곡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적 광포는 순수한 이상주의적 분노가 가차 없는 현실적 광포로 무섭게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헤르만이 로마인에 대항해서, 즉 클라이스트가 프랑스인에 대항해서 싸우고자 촉구하는 이 전쟁은 세속적이고 정치적인 목표를 위한 전쟁이 아니라 인간이 지닌 가장 성스러운 것, 즉 자유를 위한 전쟁이다. 자유는 클라이스트 문학의 근본 모티프다. 클라이스트의 경우 특징적인 것은 그의 이상주의적 분노가 한계를 모른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는 이상주의적 분노에서 비롯된 행위에 열광한다. 인간에게 가장 심오하고 귀중한 자유를 위한 투쟁, 더욱이 억압받고 있는 민족의 자유 투쟁은 선과 악, 도덕과 인간성, 국제법의 범주를 벗어나 있다. 이렇게 모든 휴머니티와 기사도 정신이 의식적으로 부인되는 데서 게르만족의 광포성이 드러난다.
200자평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복수. <헤르만 전쟁>은 독일인의 비극적 특성이기도 한 비합리적인 광포성을 구현한다. 마치 독일적 광포(Furor Teutonicus)와 광기가 클라이스트의 영혼 속에서 함께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지은이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Heinrich von Kleist)는 1777년 10월 18일 오더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연대장이었던 프리드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아들로 태어났다. 독일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의 시기에 활동한 개성이 강한 천재 극작가이며 산문작가, 서정 시인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대에는 이해되지 못했고 작가로서의 성공도 거두지 못했다. 희곡의 경우에도 일곱 편의 완성된 희곡 중 <슈로펜슈타인 가족>, <깨어진 항아리>, <하일브론의 케트헨> 등 세 편만이 공연되었을 뿐이다.
1802년부터 1807년까지 클라이스트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생애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봉착한다. 하지만 클라이스트의 생애에서 가장 위기였던 이 5년 동안 역설적으로 그의 작품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이 시기에 독일 희극의 금자탑으로 일컬어지는 <깨어진 항아리>가 완성되었고, 이성으로는 더 이상 제어할 수 없는 디오니소스적 열정으로 아폴로적 조화를 추구하는 독일 고전주의의 규범을 완전히 깨뜨린 비극 <펜테질레아>가 프랑스 감옥에서 집필되기 시작해 석방 후 드레스덴에서 완성되었다. 그리고 또한 인간이 처한 극단적 한계상황을 엄밀하면서도 율동적이고 응축된 언어로 표현한 불후의 단편인 <미하엘 콜하스>, <O… 후작부인>, <칠레의 지진> 등이 집필되기 시작했다. 1811년 11월 21일 클라이스트는 불치의 병에 걸린 헨리에테 포겔과 동반 자살을 감행한다. 반제 호숫가에서 클라이스트는 먼저 31세인 포겔의 심장을 쏘았고, 이어서 34세인 자신의 머리를 쏘았다. 두 사람은 두 개의 관에 입관되어 하나의 무덤에 합장되었다.
옮긴이
김충남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본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수학했으며, 뷔르츠부르크대학 및 마르부르크대학교 방문교수, 체코 카렐대학교 교환교수를 지냈다. 1981년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재직하면서 외국문학연구소장, 사범대학장,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세계의 시문학≫(공저), ≪민족문학과 민족국가 1≫(공저), ≪추와 문학≫(공저), ≪프란츠 카프카. 인간· 도시·작품≫, ≪표현주의 문학≫이 있고, 역서로는 게오르크 카이저의 ≪메두사의 뗏목≫, ≪아침부터 자정까지≫, 페터 슈나이더의 ≪짝짓기≫,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헤르만 전쟁≫, 에른스트 톨러의 ≪변화≫, 프란츠 베르펠의 ≪거울인간≫, ≪야코보프스키와 대령≫, 프리드리히 헤벨의 ≪니벨룽겐≫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응용미학으로서의 드라마-실러의 ‘빌헬름 텔’ 연구], [신화의 구도 속에 나타난 현재의 정치적 상황-보토 슈트라우스의 드라마 ‘균형’과 ‘이타카’를 중심으로], [최근 독일문학의 한 동향: 페터 슈나이더의 경우], [베스트셀러의 조건-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의 경우] 외에 독일 표현주의 문학과 카프카에 관한 논문이 다수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명예교수로 ‘독일 명작 산책’과 ‘독일 작가론’을 강의하고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5
제1막························7
제2막·······················31
제3막·······················61
제4막·······················91
제5막·······················131
해설·······················189
지은이에 대해···················196
옮긴이에 대해···················200
책속으로
당신은 대담하고 숭고한 임무에서 흔들리지도 피하지도 않을 것이오.
당신은 충실한 백성을 배신하는 생각도 품지 않을 것이오.
신의 아들인 당신은 부드러운 분, 봄도 이보다 부드러울 순 없을 거예요.
그러나 오늘은 무서운 사람이 되어 당신의 얼굴에서
우박과 번개를 토해 내도록 하세요!